대전 흑석동산성에서 만난 검은 바위와 고요한 산성의 시간

짙은 구름 사이로 햇살이 드문드문 비치던 오후, 대전 서구 봉곡동의 흑석동산성을 찾았습니다. 이름 그대로 검은빛의 바위와 돌이 섞여 있는 산등성이에 자리한 이 산성은, 멀리서 바라봐도 단단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도심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길을 오르는 순간 도시의 소음이 사라지고 새소리만이 공간을 채웠습니다. 돌계단을 밟을 때마다 발끝에서 묵직한 진동이 전해졌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오래된 성벽의 결을 따라 흘렀습니다. 몇 백 년의 세월이 쌓인 흔적은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버텨온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습니다.

 

 

 

 

1. 도시와 숲 사이에 숨은 입구

 

흑석동산성은 대전 서구 봉곡동의 외곽, 도안지구에서 차로 15분 남짓한 거리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는 ‘흑석동산성 주차장’을 입력하면 됩니다. 마을 끝 도로를 따라가면 흙길로 이어지는 구간이 나오는데, 입구 표지석이 그 길모퉁이에 세워져 있습니다. 주차장은 소형차 기준으로 10대 정도 수용 가능하며, 오전 시간에는 한적했습니다. 입구부터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고, 초입에는 보호림 안내문과 탐방 지도판이 함께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주변은 솔향이 짙은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걷는 내내 공기가 상쾌했습니다. 도시와 숲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풍경 덕분에, 산성으로 들어서는 첫 순간부터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2. 돌담과 숲이 만든 잔잔한 조화

 

산성을 오르다 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남아 있는 성벽의 잔해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돌은 크고 작음이 섞여 있지만 서로 단단히 맞물려 있었고, 이끼가 낀 표면이 부드럽게 반짝였습니다. 중턱쯤에 오르면 흑석동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검은 빛의 암반이 드러나는데, 빛의 각도에 따라 은회색에서 흑청색으로 변했습니다. 숲은 빽빽하지 않아 햇살이 바닥까지 닿았고, 산새 소리가 간간이 들려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바람이 불면 돌 사이의 낙엽이 흩날리며 작은 소리를 냈고, 그 리듬이 마치 오랜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인공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거의 없어 자연 속에 스며든 산성의 모습이었습니다.

 

 

3. 흑석동산성의 역사적 가치

 

안내문에 따르면 흑석동산성은 삼국시대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대전 지역을 방어하던 군사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전체 둘레는 약 1.8km로 추정되며, 비교적 낮은 구릉지형을 따라 돌로 쌓은 토석혼축 구조가 특징입니다. 성문지, 치성 터, 그리고 수구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북문지 부근에는 당시의 성벽 형태가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어 당시 축성 기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돌의 맞물림이 정교하고, 배수로 역할을 한 작은 홈이 남아 있어 기술적 완성도가 높았음을 느꼈습니다.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지역 방어 체계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는 귀중한 문화재였습니다. 돌 하나에도 장인의 손길과 세월의 숨결이 전해졌습니다.

 

 

4. 탐방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

 

산성 일대는 크지 않지만 탐방로 정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흙길과 목재 계단이 번갈아 이어져 있었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자갈이 고르게 깔려 있었습니다. 구간마다 거리 표식이 설치되어 있어 현재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턱 쉼터에는 나무벤치와 안내판이 있어 잠시 앉아 숨을 고르기 좋았습니다. 주변 정비가 깔끔해 쓰레기나 낙엽이 방치된 곳이 없었습니다. 화장실은 입구 근처 마을회관을 이용하면 되고, 음수대는 설치되어 있지 않아 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공시설이 과하지 않아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산성을 걷는 동안 시야가 탁 트여 있었습니다. 조용히 산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5. 흑석동산성과 함께 둘러볼 곳

 

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면 봉곡동 일대에 작고 아담한 카페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특히 ‘카페 돌담’은 흑석동산성을 바라보며 커피를 즐길 수 있어 탐방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습니다. 차로 10분 거리에 ‘정림사지 오층석탑’ 모형 전시관이 있어, 불교 유적과 함께 둘러보기 좋습니다. 또한 대청호 방향으로 이동하면 ‘계족산 황톳길’이 이어져 있어 트레킹 코스로 연계할 수 있습니다. 주말이라면 인근 ‘도솔마을 전통음식관’에서 지역 향토 음식을 맛보는 것도 추천할 만합니다. 산성에서 내려다보는 도안지구의 전경이 생각보다 탁 트여 있어, 짧은 산책 후 여유롭게 커피 한잔하기 좋은 코스였습니다. 하루 일정으로 충분히 알차게 구성할 수 있는 동선이었습니다.

 

 

6. 방문 시 알아두면 좋은 팁

 

흑석동산성은 전체 탐방로 길이가 2km 남짓으로, 왕복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완만한 오르막이 많아 가벼운 운동화로도 충분하지만, 돌길 구간이 있어 발목을 잘 잡아주는 신발이 좋습니다. 봄에는 진달래가 피고, 가을에는 낙엽이 붉게 물들어 사진 찍기에 좋은 시기입니다. 여름에는 벌이 많으므로 밝은 색 옷을 피하고, 물과 간단한 간식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평일 오전에는 거의 혼자 걷는 듯 조용하고, 주말 오후에는 가족 단위 탐방객이 조금 늘어납니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는 오후 3시 이후 하산을 권장합니다. 성곽 주변은 문화재 보호구역이므로 돌을 옮기거나 밟는 행위는 삼가야 합니다. 자연과 유적을 함께 존중하는 마음으로 둘러보면 더욱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마무리

 

흑석동산성은 화려한 장식도, 넓은 전시관도 없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오랜 세월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돌담 위로 부는 바람과 숲의 향기가 조용히 어우러져, 잠시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이 정돈되었습니다. 역사의 흔적이 자연 속에 스며 있는 그 풍경은 단단하면서도 따뜻했습니다.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이곳은 그 답이 될 만한 장소였습니다. 다음에는 봄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쬘 때 다시 찾아, 새싹이 올라온 숲길을 걸으며 이 산성의 또 다른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짧은 산책이지만 마음이 길게 남는, 그런 유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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